2024년 12월 12일

퇴근길에 서울시향 공연을 보러 갔다. 이 공연을 보려고 지난 1월에 예매했는데, 그렇게 치열하게 겨우 표를 구했지만 막상 공연 날짜가 다가오면 왜 이렇게 공연장 가기가 귀찮은지 모르겠다. 버스 한 번 타고 편히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그런가, 지하철 갈아타야 하는데 그것도 편히 앉아갈 수 있기도 어렵고, 공연장이 위치한 그 커다란 쇼핑몰 안에서는 매번 길을 잃을 뻔한다. 그래도 공연장 여러 번 다니면서 이제는 다행히 거기서 공연장을 가는 길은 그럭저럭 알게 되었다. 하지만 공연장 외에 다른 곳을 가라고 하면 여전히 해멜 듯… 초반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는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보면 이미 지하주차장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꽉 차 있을 때가 많다. 엘리베이터 타는 것조차 치열해진 덕분에, 공연 후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를 기억하고 그 이후로는 에스컬레이터로 다니기 시작했다.


지난 번에는 공연장 근처의 한 커다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사람은 많고 생각보다 맛도 별로고 해서 이번에는 아예 집에서 싸 온 걸 공연장으로 가기 전에 회사에서 먹고 나왔다. 조금 시간 여유가 있게 도착했는데, 공연장이 아닌 중고서점에 들렀다. 우리 동네에 있는 곳은 몇 번 가 봤는데, 여기 이 서점은 지나만 가 봤지 이번에 처음 갔다. 작은 가방을 메고 갔으니 가방에 들어가는 손바닥만한 책이나 한 권 사서 공연 시작 전에 시간도 많을 텐데 읽을까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실제로 손바닥만한 책도 사긴 했는데, 그보다 큰 책도 두 권을 더 사는 바람에 결국 종이백도 100원 내고 받아왔다. 장바구니 많으면서 왜 항상 들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는지… ;;

나는 나에게 잊히는 것이 싫어서 일기를 썼다는 순전히 제목이 와 닿아서 제일 먼저 골랐다. 내가 요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뒤늦게 블로그든 일기든 뭐든 조금이라도 다시 끄적여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라 그런가… 그리고 이 책은 마침 손바닥만해서 가볍게 읽을거리로 한 권 사려던 목적에도 부합했다. 나는 원래 비소설을 좋아하지만, 요즘 너도나도 블로그 같은 데 올린 글 출판하기가 유행인지 그런 가벼운 에세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잘 알려진 작가가 아닌 그냥 보통 사람들이 쓴 자기들의 소소한 이야기류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쳐도 잘 안 보는 편인데, 어쩌다 보니 이 책은 제목에 이끌려 사게 됐네… 수녀원 이야기는 그냥 뭔가 싶어서 집어들었는데, 만화로 되어 있다! 어렵지 않게 수녀원 생활 얘기를 해 주는 책일 것 같아서, 호기심에 샀다. 그리고 부제도… ‘춤과 반려동물과 패션을 금지해도’ ㅎㅎ 매우 사실적이군. 그리고 서평가의 독서법 이 책은 내가 이미 온라인 서점에서 발견해서 읽어보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넣어둔 지 꽤 된 책인데, 여기서 보니 반가워서 별 고민도 없이 바로 집어들었다. 오죽하면 책값이나 장소 문제 때문에 전자책으로라도 살까도 생각했었는데, 전자책보다 이 서점에서 팔던 종이책이 더 쌌다.
나는 솔직히 책벌레는 아니지만 아직도 이상하게 책 욕심이 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책으로 가리고 싶어서인가… 사실 책을 많이 읽고 똑똑한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 생각되고 나도 그러고 싶긴 한데, 나는 책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많이 읽지는 않는 것 같다. 어릴 때는 그래도 책을 즐겨 읽던 때도 있었고, 학창 시절에는 자율학습 시간에 책을 읽고 있다가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책 집어넣고 공부해라’ 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근데 난시가 굉장히 심해서 책을 오래 읽는 것도 힘들 뿐더러 사실 핑계임 컴퓨터 등 다른 걸 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일부러라도 책 읽을 시간을 많이 못 냈던 게 사실이다.
그 동안 주로 온라인 서점에서 구경하다가 책을 사곤 했는데, 오랜만에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니 또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가끔 도서관에서도 빌려보긴 하지만, 워낙 그런 책의 위생에 대해 신뢰감이 없어서;; 결국은 책을 사게 된다.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베스트셀러가 뭔지 잘 안 보게 되는데, 출판사들의 의도에 넘어가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나는 원래 underdog 성향이라 ㅎㅎ 요즘은 특히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그냥 제목을 보고 책을 넘겨보다가 마음에 들면 산다. 사 두고 읽다 만, 아니 아직 읽지도 않은 수많은 책들을 얼른 하나씩 읽어가는 게 내년의 목표다. (제발… ㅠㅠ)


어쨌든 이렇게 책을 사 들고 공연장에 갔다. 내 좌석은 무대 옆쪽이었는데, 공연 전 무대를 사진으로 찍다가 보면대의 악보들에 눈이 갔다. MOZART라고 크게 써 있는 악보 외에도 옆에 짧아 보이는 악보가 있었는데, 사진을 확대해 보니 'Happy Birthday to You'라고 적혀있었다. 누구 생일이길래 하고 찾아보니, Jaap van Zweden 지휘자님 생신이시네! 혹시나 공연 중에 무대에서 연주해 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쉽지만 연주하지 않았다. 아마도 자기들끼리 리허설 할 때 따로 연주했던 모양이다.
협연자는 Conrad Tao라는 중국계 미국인인데, 이전에 뉴욕에서 봤던 어느 현대음악 공연에 참여해서 이름은 기억이 난다. Zweden 님도 뉴욕필 지휘자이기도 했으니 아마 둘은 뉴욕에서도 종종 같이 활동했었을 테고, 한국에서 만나 더 반가웠겠구나 싶었다. (나중에 인터뷰를 찾아보니 Tao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에도 이미 Zweden과 협연한 일이 많았던 듯…) 내가 좋아하는 협주곡 중 하나인 Mozart의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연주했는데, 피아노를 잘 치기는 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나에게 Tao는 피아니스트보다는 '피아노를 잘 치는 작곡가’ 같은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어서일까… 앙코르로 연주한 Over the Rainbow도 Art Tatum의 편곡 버전이라니, 당연히 재즈 느낌. 자꾸 '솔직히'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는 않지만, 클래식 아티스트가 연주하는 재즈는 재즈 아티스트가 연주하는 재즈랑은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기교에 치중하는 느낌? 뭔가 화려하긴 한데… 어쨌든 Tao가 연주하는 무지개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아니라 뭔가 좀 찌그러진 것 같은 형태를 음악으로 표현한 느낌 같았다. 계속 Keith Jarrett이 연주한 독주가 떠오르면서 그게 더 듣고 싶어졌다.



Bruckner의 교향곡 7번은 가기 전에 열심히 예습삼아 듣고 갔다. 생각보다 괜찮더란 말이지… 그래서 기대하고 갔는데, 피곤했다… 역시 공연장 가는 길이 편하지 않으면 공연 관람에도 지장이 있음… 게다가 Bruckner, Mahler, Wagner - 소위 말하는 이 BMW 세 사람의 음악은 그 규모에서도 압도당하게 되지만, 규모가 악기 편성 뿐 아니라 음악의 길이도 한 몫 한다. ㅋㅋ 그나마 Mahler 교향곡 1번은 익숙하고 좋아하는 거라 그나마 편하게 보지만, 아직 그 외의 나머지 음악들은 더 노력이 필요하다. 올해 Bruckner 탄생 200주년이기도 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나갔다. ^^;; 나라도 올해 남은 날들 동안 나머지 교향곡들도 좀 들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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