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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나는 호텔이 좋다. 모든 인간에게는 살아가면서 가끔씩은 맛보지 않으면 안 되는 반복적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갖는다거나, 철저히 혼자가 된다거나, 죽음을 각오한 모험을 떠나야 한다거나, 진탕 술을 마셔야 된다거나 하는 것들. '약발'이 떨어지기 전에 이런 경험을 '복용'해야, 그래야 다시 그럭저럭 살아갈 수가 있다. 오래 내면화된 것들이라 하지 않고 살고 있으면 때로 못 견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런저런 합리화를 해가며 결국은 그것을 하고야 만다. 내 경우는 이렇다.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을 떠나 낯선 도시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예약해둔 호텔에 도착하고, 호텔의 예약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음을 확인하고, 방을 안내 받아 깔끔하게 정리된 순백의 시트 위에 누워 안도하는, 그런 경험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영화 대본을 몇 번 써본 일이 있다. 시나리오 작가는 인물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누군가 반드시 묻기 때문이다. '이 인물은 어떤 사람이에요?' '이 인물은 왜 이런 행동을 하죠?' 이런 질문을 배우나 제작자, 투자자로부터 받게 된다. 그럼 작가는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드라마 DVD를 보면 뒤에 부록으로 연출자와 배우 등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 경우가 있다. 코멘터리라고도 불리는 이런 부록에서 배우들은 자신의 역할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정의하고, 매회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막힘없이 설명한다. 미국의 연기자들이 아주 똑똑하고, 드라마에 대해 깊이 이해한 덕분일 수도 있지만, 개개인의 이런 탁월함은 어느 정도는 문화적 환경의 산물이다. 일단은 작가가 자신이 만든 인물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고, 그것을 연출자와 배우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한다. 많은 토론 속에서 배우는 좀더 분명하게 대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인물은 왜 이런저런 행동을 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