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0일
올해의 마지막 출근날. 버스 창 밖으로 슬쩍 보이던 뉴비틀. 분홍색? 근데 그냥 분홍색은 아니고 뭔가 약간 딸기 라떼 같은 색깔? 귀엽더만... 나는 분홍색을 별로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이들수록 어떤 분홍색은 마음에 들더라. ㅋㅋ
오랜만에 운동화 대신 앵클부츠(=구두)를 신고 갔는데 발이 아팠다. 그렇게 발 아픈 신발도 아닌데, 내 발이 너무 오랫동안 운동화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이제는 웬만한 구두는 다 발이 아프다. ㅠㅠ 평생 운동화만 신으며 살아야 하나...
회사 근처 영화관의 표값이 내년부터 오른단다. 그래도 멀티플렉스 영화관보다는 싸지만, 어쨌든 유효기간이 2년이라는 10회 관람권을 사면 꽤 많이 절약되길래 사 버렸다. (사실 그 관람권도 오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삼) 관람권을 사 가지고 나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돈 잘 버는 사람들은 요즘 수입이 괜찮냐는 물음에 '식당 가서 메뉴판 가격을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하던데, 나는 매번 가격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팔자다. 가성비를 챙길 수 밖에 없고, 할인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나 찾아볼 수 밖에 없다. 그 생활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궁상맞아 보일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남들 앞에서까지 대놓고 싼 거 찾아다니고 그러지는 않지만, 내 자신에게는 어쩔 수 없다. 오죽하면 20년 넘게 갖고 있던 내 .com 도메인도 포기했을까... 환율이 뛰니 도메인 가격도 그렇게 오를 줄이야 ㅠㅠ 솔직히 내가 엄청난 웹사이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조용히 쓰는 블로그나 연결했는데 굳이 뭐... .com 안 써도 상관없긴 하다. 조만간 누군가가 그 도메인을 사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제발 성인 사이트나 이상한 사이트는 아니기를... ㅋㅋ 어쨌든 적은 월급으로도 굶어죽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가기 위한 내 나름대로의 방식이 되어버린 것 같다.
새해 다짐이나 목표 이런 것도 이제는 잘 세우지 않는다. 어차피 작심삼일이고 뭐 얼마나 지킨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 꼭 해 보고 싶은 계획이 하나 생겼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다 쳐 보기. 물론 피아니스트처럼 치겠다는 마음이라면 몇 년도 부족하지만, 어쨌든 악보 보고 좀 틀리더라도; 그럭저럭 칠 정도라도 된다면. 그나마 다른 작품들보다 모차르트는 나에게 조금 마음이 편하고 특히 피아노 소나타는 어릴 때 주구장창 쳐서 좀 익숙한 편이기도 하니까. 다만, 어릴 때 내가 다녔던 피아노 학원에서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항상 1악장만 하고 끝냈다. 그래서 이번의 목표는 1-3악장 전 악장을 다 쳐서 익숙해지는 것. 내 손은 (의외로) 내 키에 비해 작은 편이라 ㅠㅠ 쇼팽이나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같은 작곡가들의 곡은 치기 어려운데, 상대적으로 모차르트의 곡은 한 옥타브 이상 되는 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손가락만 잘 움직이고 힘 조절만 잘 하면 크게 부담되지는 않으니까. 어쨌든 이렇게 클래식 작품 전곡을 다 쳐 보고 싶다는 생각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약 50분 길이) 이후로 처음이다. (그 때 취미로 잠깐 피아노 배우러 다녔는데, 나보다 4살인가 어렸던 그 선생님이 내가 골드베르크 변주곡 치고 싶다고 골라왔을 때 얼마나 싫어하던지… 빨리 그 곡 끝내려고 그 선생님도 나름 애썼음 ㅋㅋ) 어쨌든 작년 초에 손가락 다친 뒤로 피아노 건반 열어보지도 않았는데, 아직 이 손가락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건반을 칠 수는 있고, 연습하다 보면 다시 그 다친 손가락에도 힘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B에게 내 이 목표를 알려줘야겠다. 여기저기 큰 소리치고 다니지는 않더라도, 누군가에게라도 말을 해야 뭔가 좀 진척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B는 내가 다시 피아노 친다고 하면 누구보다도 좋아할 사람이라…
모차르트 소나타를 쳐야겠다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최근에 내가 갑자기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오랜만에 다시 듣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최근 공연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마침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이었다. 내가 고 1 때 즈음이었나, 클래식도 좋아는 했지만 그렇게 찾아듣는 편은 아니었고, 연주할 줄 아는 유일한 악기가 피아노라 그나마 피아노곡 정도만 들었고, 그 때는 재즈 음악을 훨씬 많이 좋아하던 때였다. TV에서 Bobby McFerrin이 나와서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는데, 당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고, 협연자가 Chick Corea여서 더 신기했다. 클래식 애호가까지는 아니었지만 Chick Corea는 나에게 우상 같은 사람이었고 그렇다고 재즈 연주자가 되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대단한 사람이 클래식까지 연주한다는 게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들의 모차르트 앨범이 나왔을 때는 망설임 없이 샀다. (당시 함께 종종 연주는 했었지만 McFerrin이 Corea를 설득해서 Mozart를 함께 연주해서 앨범 녹음을 하기까지는 5년이나 걸렸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그 앨범에 수록된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23번은 많이 들어서 전곡을 거의 다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인데, 그 중 20번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걸 들으니 너무 좋아서 바로 녹음해서 아이폰에 넣어 계속 듣고 있다. Corea/McFerrin의 오래된 버전에 비해 소리가 확실히 더 좋긴 하다. 오케스트라 자체도 뛰어나지만 공연장도 훌륭하고, 무엇보다도 음향/영상 기술도 훨씬 좋아졌을 테니... 연주 자체를 이 클래식 피아니스트와 Corea의 연주를 놓고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클래식은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정석이라는 느낌이 들기는 하다. 그래도 Corea의 자유로운 연주 덕분에 이 협주곡을 더 쉽게 접했었고, 모차르트의 이 두 협주곡이 나에게는 아직까지도 좋아하는 두 장르, 클래식과 재즈의 접점 같은 느낌이 든다. 베를린필과, 어딘가 Willem Dafoe를 닮은 것 같은 노르웨이 피아니스트 Leif Ove Andsnes, 그리고 90대 후반(!) 할아버지 지휘자 Herbert Blomstedt의 연주가 나에게 모차르트로 다시 피아노를 시작해 보라는 자극을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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