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8일

나라가 어지러운 요즘이다. ‘계엄령을 선포하다’ 정도는 이제 영어 표현으로 익숙해졌는데 (to declare martial law), 그 이상의 영어는 무리다. ㅎㅎ 매주 나와 각각 스웨덴과 독일에서 온라인 미팅을 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별로 할 말이 없다. 나의 이 짧은 영어로는 그저 우리 나라가 계속 messy한 상황이라고만 할 뿐. ㅋㅋㅋ 아 이 짧은 영어는 언제쯤 나아지려나… 친구의 추천으로 영어공부 앱을 하나 다운받아서 가뭄에 콩 나듯; 연습해 보는데, 발음 좋다는 칭찬만 한다. 발음 좋아봤자… 별로다. 그 놈의 발음 때문에 다들 실제 내 실력보다 내가 더 영어를 잘 하는 줄 오해하고 있다. 그래서 더 힘들다. ㅠㅠ 영어 발음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아니지만; 발음 별로여도 고급 영어로 말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인정받는 건 사실. 계속 더듬더듬하니 발음도 점점 퇴보하는 것 같다. 차라리 그냥 보고 읽는 건 하겠는데, 워낙 생각만 많고 말은 별로 없는 편이라 그런지 말은 어느나라 언어든지 나에게 어렵다. 내 모국어조차도
어쨌거나 유럽은 한창 연말엔 다들 휴가인지 잠잠하고 해서 나도 앞으로 2주간은 잠시나마 이 미팅에서 해방됐다. :) 우리 회사도 좀 느긋하면 좋겠구만, 연말연시가 제일 바쁠 때라… ㅠㅠ 근로계약 연장할 때도 됐고… ;;


미팅 중에 우리와 긴밀히(?) 협업하고 있는 F사 얘기가 몇 번 나왔다. 스웨덴 직원은 (내가 거의 이직할 뻔한) F사의 한국 지사도 새 사무실을 알아보는 것 같은데 우리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는 거에 대한 내 의견을 물었다. 나야 뭐 별 상관없다. 어차피 나 혼자 사무실을 차지하고 있기에는 넓기도 하고, 지금 책상들도 비어있으니 같이 일하면 우리 회사 지출도 절약되고… 근데 거기 사람들은 완전 공유오피스 생활에 적응된 사람들이라 이런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어떨런지 모르겠다. 여기는 맛있는 커피도 무제한으로 주는 곳이 아니라서. (폴 바셋 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다른 빌딩에 있는 데 가서 돈 주고 사 마셔야지.) 물론 그들과 같이 일하면 내 프라이버시는 좀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내가 사무실에 없는 날에 비어있는 채로 두는 것보다는 돈도 안 아깝고, 가끔 업무 관련해서 직접 대면해서 얘기하면 진행이 좀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여튼 잘 모르겠다. 나는 그들이 우리 사무실로 이사와서 같이 일해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이라...

N에게서 갑자기 서동욱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설마 내가 아는 그 서동욱(전람회)인가 했는데, 설마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아직 나이도 젊은데… 자세한 건 모르지만 기사에는 지병을 앓았다고 나와 있었다.

서동욱은 전람회를 그만둔 뒤로는 연예인, 아니 뮤지션이 아닌 일반인으로 살았다. 사실 일반인이라기에 그의 이력은 너무나도 화려하다. 자세히는 기억 안 나지만 무슨 McKinsey(?) 뭐시기, 그리고 Morgan Stanley 등등… 뭐 여튼 원래 학벌도 좋았지만 MBA도 아이비리그… 강남 8학군 출신에 집안도 잘 살았을 것 같은 느낌이고 여튼 그랬다. 전람회 시절에는 김동률과는 달리 힘없는(?) 미성으로 노래를 부르고 그래서 몰랐는데 – 물론 실제로 말하는 건 김동률보다 훨씬 잘 했지만 – 어쨌든 대단한 사람이었다. 너무 젊은 나이에… 아깝네…

전람회는 겨우 앨범 3개만 내고 짧은 기간 사이에 해체한 듀오였지만, 내 학창 시절에서 꽤 큰 부분을 차지했던 가수이다. 실제로 나는 그들이 대학가요제에 나왔을 때도 기억한다.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봐 온 다른 대학가요제 때와는 달리 처음으로, '꿈속에서'를 부르는 걸 들으면서 '전람회가 대상 받겠다’ 바로 직감이 왔으니까. 그래서 앨범이 나오면 꼭 사서 들어야지 했던 기억도 난다. 실제로 다 사서 들었고. ^^
전람회의 해체 이후, 서동욱은 음악 대신 전공을 세워 회사원이 되었고, 김동률은 혼자 음악을 계속 했다. 김동률의 목소리와 노래를 좋아했지만, 그럼에도 독집 앨범은 한 번도 산 적이 없다. ;; 그 정도로 나는 '전람회'를 많이 좋아했지, 둘 중 한 사람만 더 좋아하고 그러진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온갖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지켜준 건 음악이었는데, 그 중 전람회의 음악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나도 나름 우등생이었던 시절이 있긴 했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끈기 있고 강하지는 못했다. 수많은 '공부 잘 하는’ 애들 사이에서 나는 도태되어 버렸다. 처음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내 성적은 그들 사이에서도 무난했던 편인데, 이미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떼고 들어온 친구들을 따라가기도 벅찼다. 그렇게 나는 입학 때와는 달리 성적이 떨어졌고 (실제로 공부 잘 하는 혹은 돈 많은 친구들을 편애하던 한 담임 선생님이 나를 무섭게 노려보면서 성적표를 준 적도 있었음 ㅠㅠ)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회복하지 못했다. 죽어라 공부하는 체질이 아니다 보니… ;; 그리고 고등학교 3년 내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대학교에, 성적에 맞춰 입학했다.
그렇다고 대학에서 공부를 잘 한 것도 아니었다. 적성에 맞춰서 오긴 했지만 좋아하는 공부는 아니었고, 결국 좋아하는 걸 찾겠다며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겨우 설득 끝에 복수전공을 시작했지만 - 1년을 더 일찍 했으면 전과도 가능했지만 이미 늦어서 복수전공으로, 근데 지나고 보니 그 전공조차도 잘 못 살린 것 같은 느낌… 성적에 내 적성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럴 거면 굳이 왜 했나 싶은 그 복수전공 덕에, 그나마 거기서 성적이 잘 나와서 겨우 간신히 평점을 약간이나마 올린 정도? 나에게서 '우등생'이라는 단어는 아주 오래 전에 사라졌다. 주의가 산만한 나에게 진득하게 앉아서 공부에 매진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공부에 매달리는 친구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나는 잔머리 굴리기 덕에 그나마 여기까지 온 케이스라;; 어쨌든 힘들었던 학창 시절에 좋았던 기억 대부분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 그리고 약간의 독서와 농구 경기 감상으로 마음에 위안을 받았던 거였고 (사실 주객이 전도돼서 공부보다 그 쪽에 더 빠져 살았다), 그 음악들 중에 전람회의 음악도 있었다.


오랜만에 전람회의 세 앨범을 꺼냈다. 내일 저녁에 오갈 때 지하철 안에서도 들으려고… 고인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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