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걸은 날

공원 내 정원 구경과 뮤지엄 하나 가는 게 오늘 계획이었으나, 정원은 복원 공사 중이라 오픈되어 있지 않았다. 역시 내 운은 항상 이렇군.
남들 엄청 바쁘게 여기저기 다닐 때 뒤늦게 일어나서 느긋하게 설렁설렁 다니는 나에게,
뭔가 좀 보러 가겠다고 마음 먹은 것조차도 이렇게 운이 없다니...

요즘 뉴욕 뮤지엄들 상당수의 입장료가 거의 $25-30 정도다.
물론 전시 보는 거 좋아하긴 하는데 그렇게 입장료가 비싸면 돈 아까워서라도 뮤지엄에서 엄청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오래 있는 편은 아닌데... 그렇게 나는 이번에 뉴욕에서 규모가 작은 뮤지엄 위주로 다녔다.
오늘은 Neue Galerie. 하필 특별전 준비 기간이라 전시품이 많지 않은 것 같았다. 대신 입장료는 $10.
여기 전부터 가 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으나 여의치 않아 계속 놓쳤다가 이번에는 시간이 많아 보러 갔다.
역시나 전시 작품이 별로 없어서 (사실 이걸 $10나 받나 싶을 정도로 적어 보였음) 1시간도 좀 안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Gustav Klimt의 그림만으로도... 감동적이긴 했다. 그 유명한 Adele Bloch-Bauer의 초상화!
(그리고 Egon Schiele도 약간.)





보고 싶었던 정원도 못 보고 뮤지엄도 금방 보고 나오니 뭔가 좀 아쉬웠다. 이 윗동네까지 굳이 왔는데 말이지.
그나마 생일자 무료 음료로 아이스 PSL 하나 마신 게 그나마 좀 생산적(?)이었던 느낌?
예전에 UES에서 가끔 쇼핑하기 좋아했던 곳이 있어 오랜만에 찾아갔는데, 이번에는 별로 사고 싶은 게 없어 그냥 나왔다.
여기 흔하지 않은 디자인도 많아 좋았는데, 이젠 그래도 '그 돈 주고 사고 싶은' 생각이 들 만한 아이템이 없었다.
정말 뉴욕에서 옷 한 벌 안 사게 될 줄이야. 아 Citi Field에서 산 jersey가 있긴 하군

도서관에 전에 사고 싶었던 굿즈나 사러 가야겠다 하고 내려왔다. 이미 지쳐서 도서관 내부 여기저기 구경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가서 신청해 둔 카드도 받아오고. 내가 여기 사는 사람이 아니고 방문자라 했더니, 방문자도 카드 받을 수 있다 해 놓고선,
막상 여기서 bill 같은 거 내는 주소가 있냐며... (아니 방문자가 무슨 bill을...)
여권에 적혀있는 (내 손으로 적은;) 한국 주소를 보여줬는데, 담당자는 마침 근처에 있던 은발의 한국인(!) 직원을 불렀다.
그 분이 내 여권을 보더니, 지금 지내는 곳이 어디냐 물어봤고,
여권에 같이 적어둔 주소 및 휴대폰에 저장해 둔 호스트의 연락처와 주소를 보여주며 여기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 분은 담당자에게 내가 에어비앤비에서 지내고 있다며 둘이 얘기하더니 어쨌든 임시 카드를 발급해 주었다.

사실 나는 책을 빌릴 것처럼 말하면서 카드를 발급받고 싶다고 했지만, 실제로 책을 빌릴 생각은 없었다.
(처음 입국하고 들어올 때 도서관 근처 숙소에 들어와서 지낸 것도 아니고,
3일 뒤에 떠나는데 이제 와서 뭐하러 책을 빌려 - 3일 남았는데 사실 한 달 있는다고 뻥쳤다 ㅋㅋ)
그냥 도서관 카드를 갖고 싶다는 이상한 욕심과...
어쨌든 이 카드로 최소한 전자책은 빌릴 수 있기 때문에 - 예전에도 한 번 그렇게 빌려서 한국 돌아와서
NYPL에서 대출해 주는 전자책을 빌려 본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럴 생각이었다.
들어보니 유효기간이 3개월이라 하니 내년 1월 초까지는 전자책 대여는 가능하니까.

C와 내가 사랑하는 공원에 잠시 앉았지만, 우리가 아니라 나 혼자 있으니 마음이 조금 허해졌다.
'얼른 숙소에나 가야지' 하며 오래 있지 않고 일어났다.
(날씨 운이 별로 없어서 우리가 갔던 날은 비가 오고 우중충해서 좀 아쉬웠다. 오늘 날씨는 정말 좋았는데.)

출장에서 돌아온 호스트를 마침내 만났다. 서로 인사하고 얘기를 나누던 중, 호스트의 파트너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 둘도 호스트의 출장 이후 약 1주일 만의 재회라 서로 너무 좋아했다.
내 앞에서 과격한 애정 표현은 아니었지만 둘이 좋다고 끌어안고 뽀뽀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그들은 내가 저녁을 먹으려고 부엌에 갈 때 보니 둘이 소파 위에서 서로 기대고 붙어 앉아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나도 나름 영화나 미드 등에서 동성애자들을 봤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동성애 커플을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내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들은 내가 보는 앞에서는 과한 애정행각을 하진 않았다.

역시 Manhattan 내에서 돌아다니니 많이 걷게 되는군. 이 날이 뉴욕에 와서 제일 많이 걸은 날 중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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